2009년 04월 01일
부족전쟁요지경 세상.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룰은 없고 걍 자신이 매너라고 믿는 바 대로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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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2071 | 2009/04/01 02:45 | 방명록 | 트랙백 | 덧글(5)
2008년 04월 10일
길을 걷는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듯이, 나도 길을 나서는 때에 무언가 나의 취향을 안고서 그 마음을 충족하기 위해서 길을 걸어야 할텐데, 아직은 수양이 짧아서 그런 공력을 이루지는 못했다. 다만 어떤 의무감이나 혹은 내몰림에 못이겨 길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고, 여태 무엇을 느낀다거나 보듣기 위해 길을 스스로 떠나 본 적은 없었다. 시험을 일단 끝냈으니 길을 나선다,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은 요 며칠간의 여행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순간 마음 내키는 곳, 혹은 그 순간의 변덕에 따라서 향방을 정했고 길을 밟았다.
설악을 택한 건 순전히 금전적인 이유였다. 워낙은 전부터 지리산을 가고 싶었더랬다. 남녘에 있는 산이고, 내가 사는 곳과 멀었으며 가장 그 자락이 깊은 산이라고 이런저런 이약에서 적잖이 접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지리산은 그 사실 이외에는 어떤 것도 알지 못했고, 그 차비를 부담할 여력도 별로 없었다. 설악은, 그에 비하면 편히 갈 방법이 있던지라 가게 되었다고 해야하나. 실상 설악은 중 고교 시절 두차례 다녀왔을 뿐더러 지나치게 그 이름 많이 들은 산이라 진부하기까지 했지만, 달리 가고 싶은 곳도 없고 제공되는 교통편이 오로지 설악으로만 향하는 것인지라, 별 도리가 없이 설악을 향했다.
백담의 자락 끝에 발을 딛고서 능선을 향해 길을 밟았다. 전투환씨가 장작패며 비극의 주인공 연출하던 바로 그 절 백담사는 중청봉에서 시작되어 백개의 연못을 뿌리며 흐르는 산자락의 맨 아래켠에 널찍한 터를 잡고 앉아 있었다. 목적지는 봉정암, 중청봉 봉우리 바로 아래 터잡은 암자이고, 풍문에는 그 흔하다는 고려시대로 되짚어 올라갈 수 있다는 그런 사찰이었다. 남한에서는 하늘 아래 첫 사찰이라고 하기에 대체 어떤 곳이기에 그런 별명까지 붙었나 (실지로는 태백산 망경사, 지리산 법계사가 더 높지만 적멸보궁에 터한 사찰이라는 점과 접근 난이도 면에서 그런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싶기도 했고, 운동부족에 늘어가는 뱃살이 지겹기도 했어서 환한 정오에 출발했다.
산불보호 기간이라고 하면서 등산객의 등반을 금지하고 있었고, 순례를 목적한 조계종 신도들의 출입만을 허가하는 국립공원 직원에게 신도증을 내보이고 검문을 통과했다. 군대가 내게 선사한 세 장의 신도증 - 기독교, 천주교, 불교 - 을 유효하게 써먹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13km 정도의 산길이라는 이정표를 곧 발견했고 거기서 널찍한 가지를 사방에 뻗고 있는 우람한 전나무와 사람을 피하지 않는 다람쥐를 보았다. 겨우내 불자를 제외한 사람들이 닿지 않았다는 길이라 경계심을 잃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숲과 산길이 시작되었다.
기대보다 물은 더 초록빛으로 이쁘게 흘렀고, 산길은 조금 더 편했으며, 산록에 눈들이 채 녹지 않고 있어 기대 이상으로 추웠다. 3시간 정도를 산길을 따라 오르다가 결국 두터운 겉옷을 꺼내어 몸에 둘렀다. 외투 속은 땀으로 가득했고 볼은 발갛게 물들었다. 재작년에 길을 따라 세웠다는 계단길 곳곳의 쇠난간은 너무 차가웠다. 산길 따라 길을 세운 이들의 덕업이 고맙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4월의 태양만 생각하여 장갑을 챙기지 않은 내게는 섭섭했다. 길을 따라 늘어선 폭포수와 못에 간혹 둥둥 뜬 빙산같은 눈더미들이 더할 나위없이 신기했다. 물은 얼음보다 조금 더 찼다. 그리 많은 사람들이 흔하게 다니는 길은 아닌지라 제대로된 길이 아닌 곳도 많았고, 그리 적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 또한 아닌지라 걸음이 크게 막히는 길목 또한 없었다. 다만 나 자신의 운동부족, 나태함의 뱃살이 내 다리를 잡아 걸었을 뿐이다. 그나마도 그렇게 힘들지도 않게 산을 올랐고, 다만 4시간 가까이 변화없는 풍경에 조금 지쳤을 따름이었다. 깔딱고개 아래에 거의 다다랐을 때까지 내가 느낀 건 대충 그 정도 느낌이었다.
'← 봉정암 500m'의 표지를 본 것은 그 어간이었다. 푸른 적송의 숲 아래에서 표지목 위에 다람쥐가 한 마리 올라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4시.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때까지 길은 힘들 것도 없었고, 지칠 일도 그다지 없었다. 문제는 그 표지 그 다음부터였다. 그 표지는 세 면이 절벽으로 가로 막힌 곳에 서있었고, 나머지 한 면은 내가 들어온 바로 그 길이었다. 깎아지른 절벽은 아니었지만 방구석붙이인 내게는 충분히 절망스럽게 가파른 절벽 사이로, 계단과 줄이 엿보였다. 절벽을 다 오르면 그 옆으로 또 다른 절벽이 시작되었고, 그 절벽을 다 오르면 이전엔 사각이었던 곳에 또 다른 계단이 보였다. 고작 500m를 가는데 한시간 반이 걸렸다. 너무나 힘겨워, 중간에 내려가는 것조차 불가능한 그런 곳이었다. 그 고개 중간에서 산을 내려가는 스님과 마주쳐, 봉정암이 바로 그 절벽 위라는 걸 전해 듣지 않았으면 내가 어떤 길을 택했을지 잘 모르겠다.
봉정암은 중청봉 자락에, 글자 그대로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짐작한대로 법당에 불상은 없었고, 대신 다시 100여개의 계단을 오른 위에 석가의 사리가 모셔진 사리탑이 있었다. 이 땅에 다섯곳 뿐이라는 적멸보궁 중 다른 한 곳까지 어쨌든 와본 셈이었다. 중청봉 넘어 보이는 봉우리가 대청봉이라고 했다. 사리탑 아래로 등산로가 널리까지 내려다 보였다. 그 너머 산기슭의 바위는 마치 기도하는 여래상 같은 모습을 띄고 있다고 했다. 이런 고도에 굳이 암자를 지은 이유는 아마도 그 바위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굳이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종교를 믿는 이들이 그 마음으로 세우는 공덕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 곳에 이 고지에 힘들여 나무를 나르고 돌을 굴려 절을 세우고 탑을 쌓았던 그 이들은 행복한 마음으로 일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금의 전각의 복원에 헬기가 필요한 그런 작업이다. 그 고된 작업이 행복없이 이뤄졌을 것이라 생각할 재간이 내겐 없다.
6시에 봉정암의 저녁 공양이 시작된다. 암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기진한 뒤라, 다른 무언가를 할 기력도 없었던 터라서 공양을 감사하게 받아 입 속으로 털어넣었다. 불가의 도량이니, 당연히 공양에는 오신채와 동물이 들어있지 않았다. 야채나 쌀 한톨 운송도 모두 헬기로 해야만 하는 곳이라, 찬도 단촐하기 그지 없었다. 공양은 오직 쌀밥에 오이무침과 미역국이 전부였다. 당연하게도, 그나마도 없어서 못 먹을 지경으로 급히 먹었다. 맛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부족한 게 문제지 맛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공양하는 스님은 더 들 사람은 말하라고 하는데, 헬기로 공양을 나른다는 말을 듣고서도 더 먹을 정신 같은 건 난 별로 갖고 있지 못해서. 식사 후에는 해우소를 들릴까 했는데, 구식 퍼세식인 것을 보고 발을 되돌렸다. 거기 쭈그리고 앉아있을 기력이 내 다리에 남아있는지 자신이 안 서서. 중청봉은 바로 법당 뒤 그리 높지 않은 곳이어서, 식후 동네 뒷산 다녀오듯이 잠시 밟아 올 수 있었다. 그것으로 남은 체력은 끝.
방을 한 칸 받고, 방에서 짐을 푼 그 순간 부터 잠이 들었다. 여섯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었는데, 다른 사람들 얼굴 같은 건 보지도 못하고 잠이 들었다. 사실 거기까지 갔으니 여간하면 저녁 예불에도 들어가 보고 새벽 예불에도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몸은 별로 그럴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열시간을 내리잤고, 여섯시 아침 공양 방송에는 그래도 용케 깨어났다. 다시 전날과 같은 찬과 밥을 받아 먹고, 절에서 준비해준 주먹밥을 받아 들고서 내려올 채비를 하였다. 다행히 내려오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전날에 비하면 나는 듯한 빠르기로 길을 되밟았다. 전날은 심상하게 지나쳤던 길 위를 뒤 엎은 눈이나, 눈 위를 다시 눈이 덮어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들을 지나서, 냇가에서 잠시 주먹밥을 꺼내 먹으면서 노닥이기도 하고. 온통 새로 지은 법당 뿐이라 단청이 없어 나뭇빛 그대로의 뼈대를 드러낸 영시암에 들렀을 때 건강 기원이라는 말을 지나치기 어려워 부친 이름으로 기와를 하나 기부한 것 외에는 별 다른 일 없이 백담까지 길을 되짚어 내려올 수 있었다. 백담사 아래켠에서 휴대폰을 다시 켜니 화면에 정오가 새겨졌다. 스물 네시간만에 다녀온 셈이다.
# by 2071 | 2008/04/10 11:54 | 트랙백 | 덧글(3)